최근 인공지능이 창작한 소설, 시, 에세이가 문학 시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언어 모델의 고도화로 인해 문장 구성, 이야기 구조, 심지어 감정 묘사까지 흡사 인간 작가의 수준에 이른 작품들도 다수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AI가 쓴 소설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AI가 생산한 텍스트가 과연 문학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창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시대에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봅니다.
AI 소설의 등장과 그 놀라운 문장력
AI는 이제 단순한 문장 생성기를 넘어선 수준입니다. GPT 계열의 언어 모델이나 Google Bard, Claude 등은 방대한 문학 데이터를 학습한 덕분에, 일정한 주제를 부여하거나 특정 문체를 지시하면 문장 구조와 맥락이 자연스럽고 일관된 이야기로 이어지는 소설을 써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초보 작가보다 더 정돈된 글을 생성해 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AI가 작성한 단편은 문학상에 출품되기도 했으며, 인간이 작성한 글과 구분이 어렵다는 평을 받은 사례도 존재합니다. 특히 장르 문학에서는 AI가 공식화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 흐름을 구성하고, 전형적인 인물 유형을 조합해 독자를 만족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SF, 판타지, 추리소설과 같은 장르에서 AI는 이미 강력한 서사 생산 기계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AI는 문체를 모방하는 데 매우 능합니다. 헤밍웨이처럼 짧고 건조한 문장, 무라카미 류 같은 비일상적 감성, 한국 문단의 산문체까지 학습하여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문학을 ‘텍스트의 완성도’만으로 본다면 AI도 작가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가능케 합니다.
창작이란 무엇인가: 기계는 창조자인가 모방자인가
그러나 AI가 창작한 텍스트를 진정한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문장력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문학은 단지 ‘문장을 잘 쓰는 행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의 체험, 고뇌, 역사적 맥락’을 담은 인간성의 표현입니다. AI는 인간의 고통을 체험하거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방대한 데이터 속의 통계를 기반으로 그것을 모방할 뿐입니다. 즉, AI는 창조자라기보다는 정교한 모방자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는 예술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고유한 감정, 상처, 시대 인식의 결과물입니다. AI는 트라우마를 경험하거나, 사회적 억압을 체화하거나,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언어는 정확할지언정 깊이의 측면에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또한 창작의 의도성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작가는 왜 그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가? 어떤 경험이 글을 통해 승화되었는가? AI는 목적도, 의도도, 사유의 내면도 갖지 못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결과물이 아무리 매끄럽고 흥미로울지라도 그것을 ‘문학’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AI와 인간 작가의 공존,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
그렇다고 해서 AI 소설을 완전히 부정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시대의 문학은 ‘AI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창작의 지평을 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AI가 초안을 작성하면, 인간은 그것을 편집하고 감정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창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적 사용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 파트너로서 AI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부 작가들은 AI의 창의적 오류에서 영감을 얻는다고도 말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나 표현은 인간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문학적 실험이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과거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자동기술(automatic writing)을 활용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AI가 쓴 소설을 문학적 ‘거울’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와 사유 패턴을 반영한 결과물인 AI 소설은, 오히려 인간 자신이 어떤 사고방식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메타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즉, AI 소설은 인간의 집단적 무의식을 기계적으로 반영한 집합적 창작물이며,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해석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학의 정의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듯, 창작의 방식 또한 시대와 기술에 따라 변화합니다. AI는 문학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문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론: AI는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은 인간의 것이다
AI가 만들어낸 소설은 분명히 읽을만하고 때로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학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단순히 ‘잘 쓴 글’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왜, 어떤 맥락에서 썼는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시대를 비판하며, 고통과 사랑을 통과한 언어로 이루어집니다. AI는 그 흉내를 낼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느끼고 살아내지는 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AI가 쓴 소설을 ‘흥미로운 텍스트’로 인정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온전히 문학이라 부르기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있습니다. 결국 문학은 기술이 아닌, 인간의 깊이와 의식을 담아내는 고유한 예술입니다. AI가 함께 하는 시대일수록,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에 더욱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